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위대한 쇼맨 (2017)> 리뷰 - 사운드트랙, 용기, 위대함의 의미

by 꿈꾸는 타마 2026. 3. 21.

뮤지컬 영화가 정말 '위대한' 이유는 화려한 무대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이면의 메시지 때문일까요? 저는 <위대한 쇼맨>을 처음 봤을 때 단순히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특히 제가 과거 댄스 공연에서 오프닝 곡으로 이 영화의 넘버를 직접 사용했던 경험이 있어서,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비트와 에너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오프닝부터 터지는 에너지, 그리고 사운드트랙의 위력

영화의 첫 장면부터 흐르는 'The Greatest Show'는 관객을 단숨에 빨아들이는 강력한 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곡이 실제 무대 등장곡으로 사용될 때 관객의 반응이 어떻게 변하는지 직접 체감했기에, 영화 속 바넘이 관객 앞에 섰을 때의 그 전율을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휴 잭맨과 잭 에프론이 술집에서 협상하며 부르는 'The Other Side'는 뮤지컬 영화의 안무 설계(Choreography Design)가 얼마나 정교한지 보여주는 백미입니다. 안무 설계란 춤과 동작을 음악의 박자, 가사의 의미와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시각적 서사를 완성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술잔을 주고받는 타이밍, 카메라 앵글의 전환, 두 배우의 호흡이 완벽하게 싱크되는 순간은 그야말로 영화적 쾌감의 정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세 번 이상 돌려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디테일이 보이더군요.

사운드트랙 전체를 놓고 봐도, 이 영화는 팝(Pop)과 뮤지컬 넘버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했습니다(출처: 빌보드). 실제로 'This Is Me'는 2018년 골든글로브 주제가상을 수상했고, 빌보드 차트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하며 대중성을 입증했습니다.

'This Is Me'가 건네는 용기

영화 중반부, 서커스 단원들이 부르는 'This Is Me'는 단순한 음악 넘버를 넘어 사회적 소수자(Social Minority)의 자존감 선언문입니다. 'Never Enough'가 불릴 때의 그 압도적으로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단원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채 공연을 진행 장면은 분명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음악 이면에 숨겨진 차별의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 연출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있었기에, 이어지는 'This Is Me'의 울림은 더욱 강력한 폭발력을 갖게 됩니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는 그 순간은, 자존감이 떨어진 날 들으면 절로 눈물이 날 만큼 뜨거운 용기를 전해줍니다. 또한 영화는 이런 소외된 이들에게 무대를 주면서도, 동시에 바넘이라는 인물의 계급 상승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바넘은 자신을 무시했던 상류층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정작 자신을 믿고 따르는 단원들을 뒷전으로 밀어냅니다. 결국 바넘의 야망이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 것은 가족의 의미와 진정한 유대였습니다.

실제로 역사적 인물 P.T. 바넘은 인간 동물원(Human Zoo) 형태의 쇼를 운영하며 신체적 특이성을 가진 사람들을 전시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출처: 스미소니언 매거진). 영화는 이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 영화가 그 문제를 완전히 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바넘의 욕망과 실수를 보여주고, 그가 다시 본질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Rewrite the Stars'와 신분 차별의 벽

필립과 앤이 부르는 'Rewrite the Stars'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공중 곡예(Aerial Acrobatics) 기법을 활용한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후프와 로프를 이용해 중력을 거스르며 춤춥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가사와 안무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감탄했습니다.

"별을 다시 쓸 수 있다면(Rewrite the Stars)"이라는 가사는 운명과 신분을 뛰어넘고 싶은 두 사람의 간절함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필립은 부모님 앞에서 앤의 손을 놓아버리고, 앤은 스스로 그의 곁을 떠납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로맨스가 아니라, 19세기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Racial Discrimination)과 계급 장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영화가 단순히 "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는 뻔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선과 맞서 싸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솔직하게 그렸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필립이 화재 현장에서 앤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들 때, 비로소 그가 사회적 체면보다 사랑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넘의 몰락과 회복, 그리고 진짜 '위대함'의 의미

바넘이 제니 린드와의 투어에 몰두하며 가족과 단원들을 소홀히 하는 장면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성공에 대한 집착이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는 교훈은 뻔하지만, 영화는 이를 단순한 설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서사로 풀어냅니다. 제니가 마지막 무대에서 바넘에게 키스하는 장면은 계획된 스캔들이었고, 이로 인해 바넘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박물관이 불타는 장면에서, 바넘이 필립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은 그가 비로소 본질을 되찾았음을 보여줍니다. 타인의 인정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단원들이 바넘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보며, 진짜 위대함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바넘이 필립에게 단장 자리를 물려주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해피엔딩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바넘의 선택은 성공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을 되찾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위대한 쇼맨>은 1시간 44분 내내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려한 뮤지컬 영화이지만, 그 이면에는 계급 차별, 신분 장벽,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화려한 성공보다 진정한 유대가 더 위대하다는 것을, 그리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숨지 않고 당당하게 서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만약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영상과 함께 감상하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사운드트랙만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시각과 청각이 완벽하게 결합된 감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KYGl8RGXMqs?si=_7kEkSuQTbM7bNCh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