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라그나로크>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내에서 가장 극적인 파격과 변신을 선보인 작품입니다. 기존 토르 시리즈의 부족한 완성도를 뛰어넘어 유머와 전자오락 같은 강렬한 액션으로 오락성을 극대화한 영화입니다. 사카아르 행성의 키치한 색감과 80년대 복고풍 음악이 어우러진 연출은 기존 히어로 무비의 문법을 완전히 뒤집는 신선함이었습니다.

요약: 아스가르드의 종말, 그 비극 위에서 춤추는 희극
영화는 죽음의 여신이자 토르의 누나인 헬라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 아버지 오딘의 죽음과 함께 봉인에서 풀려난 헬라는 토르의 상징과도 같은 무기 '묠니르'를 단숨에 박살 내며 압도적인 위용을 과시합니다. 아스가르드로 향하던 중 비프로스트 밖으로 튕겨 나간 토르는 쓰레기 행성 사카아르에 불시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랜드마스터의 노예 검투사 신세가 됩니다.
운명처럼 투기장에서 재회한 '직장 동료' 헐크와 새로운 동료 발키리, 그리고 여전히 미워할 수 없는 악동 로키와 팀 '리벤져스'를 결성한 토르는 탈출을 감행합니다. 아스가르드를 점령하고 백성들을 학살하는 헬라를 막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토르는, 전투 중 진정한 '천둥의 신'으로서 각성하며 망치 없이도 번개를 다루는 능력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아스가르드가 존재하는 한 무한히 강해지는 헬라를 막기 위해, 토르는 역설적으로 고향을 파괴하는 '라그나로크'를 실행하기로 결심합니다. 수르트의 불길 속에 아스가르드는 사라지지만, 토르는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니라 백성"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생존자들을 이끌고 우주로 향하는 새로운 왕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헐리우드 기술력이 빚어낸 시각적 황홀경과 유머의 향연
개인적으로 토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이 영화입니다. 사실 이전의 토르 시리즈는 다소 무겁고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가졌기에 개별 시리즈로서의 매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라그나로크>는 그 모든 편견을 깨뜨리며 가장 유머러스함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농담과 경쾌한 톤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종말'이라는 소재를 오락적 쾌감으로 승화시키더군요.
특히 시각적인 측면에서 받은 충격이 상당했습니다. 빌런인 헬라의 외형 디자인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고퀄리티로 위화감 없이 표현했을까?" 싶어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결합한 헬라의 비주얼은 헐리우드의 경이로운 기술력을 다시금 실감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백미는 토르가 각성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이 흐르며 번개를 몸에 두르고 적진을 초토화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묠니르라는 도구에 의지하던 영웅이 스스로의 본질을 깨닫는 그 찰나의 순간은, 제가 히어로 무비에서 기대하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었습니다.
오락성의 정점에서 마주한 캐릭터 변주의 명암
이 영화는 마블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을 통해 학습한 가볍고 경쾌한 진행 방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입니다. 사실 그동안 토르는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 비해 개별 작품으로서의 매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어벤져스의 가교 역할에 머물던 토르에게 타이카 와이티티는 '전자오락 같은 액션'과 '시종일관 쏟아지는 유머'라는 강력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고, 이는 오락성 측면에서 킬링 타임 무비로서의 확실한 위치를 점하게 했습니다.
다만,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유머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플롯과 캐릭터 소모에 있어서 허점을 드러낸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예를 들어, 브루스 배너 박사가 지나치게 희화화되어 그가 가진 지적인 고뇌가 희석된 부분이나, 비장해야 할 라그나로크의 예언이 사카아르 행성에서의 농담들에 밀려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완급 조절의 실패는 평론가적 시선에서 볼 때 뼈아픈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묠니르를 파괴함으로써 토르의 강력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해낸 연출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네가 망치의 신이냐?"라는 오딘의 질문처럼, 도구를 잃은 영웅이 정체성을 회복하는 서사는 이 영화가 지닌 가장 단단한 뼈대입니다. 비록 내러티브의 설득력은 다소 부족할지라도, 쾌락적 질주만큼은 MCU 내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